솔직히 저는 약을 극도로 안 먹는 사람입니다. 미련할 정도로요.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도 석 달 가까이 약을 손에 쥐었다 놨다를 반복했습니다. 아픈 데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작년부터 걸을 때마다 다리가 터질 듯 아파서 걷다 서다를 반복하는 증상이 시작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고지혈증 진단, 왜 이렇게 갑자기 느껴질까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관리 안 하면 뇌졸중이 올 수 있다고요.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런데 정작 몸에서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지혈증은 정말 증상이 없습니다. 고혈압은 수치가 230 가까이 올라가면 두통이 오기도 하고, 당뇨는 소변이 잦아지는 신호라도 있는데 고지혈증은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무 신호가 없습니다. 그래서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피검사 결과를 받아보면서 한 가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간 기능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처음엔 '고지혈증인데 간이 좋다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콜레스테롤은 간에서 합성됩니다. 간 기능이 우수한 사람일수록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즉, 고지혈증은 내가 뭔가를 잘못 살아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간의 합성 능력이 체질적·유전적으로 높게 세팅된 상태라는 겁니다.
이걸 알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아, 내가 잘못 먹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요. 실제로 고지혈증이라는 병명이 공식화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고, LDL 콜레스테롤(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이 보편화된 것도 200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여기서 LDL 콜레스테롤이란 혈액 속에서 콜레스테롤을 실어 나르는 운반체로, 혈관벽에 쌓여 염증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 때문에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립니다. 측정 기술이 생기고, 이를 낮추는 약이 나오면서 비로소 관리 대상이 된 것이지 태생적으로 나쁜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LDL 콜레스테롤과 동맥경화, 다리 통증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
제가 걸을 때마다 다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던 이유를 이제는 정확히 압니다. 동맥경화입니다. 동맥경화란 혈관 안쪽 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걸을 때처럼 근육에 산소 수요가 늘어나는 순간 통증이 폭발하듯 터집니다. 심해지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오고, 발끝이 괴사 하여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동맥경화가 생기는 원리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고혈압이 혈관벽에 물리적인 상처를 만들면, 혈액 속에서 떠다니던 LDL이 그 틈새에 박혀 염증을 일으킵니다. 염증이 반복되다 면역 세포마저 쌓이면서 결국 혈관벽 안에 누런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동맥경화판(plaque)입니다. 여기서 플라크란 혈관 내벽에 지방, 콜레스테롤, 칼슘 등이 겹겹이 쌓인 덩어리를 가리키며, 이것이 터지면 혈전이 생겨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저를 놀라게 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내장지방과 고지혈증의 관계입니다. 내장지방이란 피부 아래에 쌓이는 피하지방과 달리, 복강 내 장기 주변에 축적되는 지방으로 전신 염증을 일으키는 대사 이상의 핵심 원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볼록 나온 이른바 '마른 비만'이 특히 많은데, 이 체형은 체질량 지수(BMI) 기준으로는 비만 판정을 받지 못하면서도 내장지방 수치는 매우 높습니다. 여기서 체질량 지수(BMI)란 몸무게(kg)를 키의 제곱(m²)으로 나눈 수치로,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이지만 내장지방의 정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허리둘레가 남성 90cm, 여성 85cm를 초과하면 내장지방 과다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혈액 검사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수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LDL 콜레스테롤: 혈관벽에 쌓이는 나쁜 콜레스테롤. 이 수치가 높을수록 동맥경화 위험이 올라갑니다.
- 중성지방(TG): 기름진 식사를 얼마나 했는지 보여주는 지표. 250 이상이면 식단 점검이 필요합니다.
- HDL 콜레스테롤: 혈관에서 콜레스테롤을 회수해 간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낮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LDL 수치 관리가 우선입니다.
- 총 콜레스테롤: 네 가지 중 참고 수치이며, LDL 단독 수치가 더 중요합니다.
스타틴 부작용, 무서워도 알고 먹어야 한다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입니다. 효과는 강력합니다. 저도 한 달 복용 후 수치가 눈에 띄게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약을 잘 안 먹는 사람한테 스타틴이 특히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고지혈증은 원래 아무 증상이 없는데, 스타틴을 먹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생전 없던 근육통이나 쥐 내림 증상이 생깁니다. 없던 통증이 약 때문에 생기니, 몸이 망가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이 부작용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을 유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스타틴이 합성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근육 세포막 보수가 제대로 안 되어 근육 세포가 미세하게 손상됩니다. 이게 근육통과 쥐 내림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야간에 쥐가 나면 수면 방해까지 겹쳐서 약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이게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꽤 불편했고, 납득이 가지 않으면 약 복용을 중단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부작용은 관리가 가능합니다. 약의 종류를 바꾸거나 용량을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PCSK9 억제제라는 주사제도 있습니다. PCSK9 억제제란 LDL 수용체를 분해하는 단백질을 차단하여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강력하게 낮추는 신약으로, 스타틴 부작용이 심한 환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6개월에 한 번 주사하는 방식이고 비용이 2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어 아직 접근성이 높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스타틴 부작용이 없거나 적은 대안 약물이 점점 보급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폐경 이후 여성이라면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폐경 후에는 에스트로겐 감소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뇌졸중 발생률도 함께 높아집니다. 실제로 뇌졸중은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더 많지만, 여성의 경우 폐경 이후 발생이 집중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대한신경과학회). 이 시기에 LDL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가 여성 건강에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운동과 식단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처음엔 열심히 운동하면 수치가 확 떨어지길 기대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유산소든 근력 운동이든 콜레스테롤 수치 변화에는 미미한 영향을 줍니다. 오메가3 섭취나 건강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짝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결국 콜레스테롤 수치는 식단이나 운동보다 간의 합성 능력이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2022년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진료지침에서도 LDL 콜레스테롤 목표 수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 교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고지혈증이 걱정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혈액 검사에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반드시 확인한다.
- 허리 둘레가 기준치(남성 90cm, 여성 85cm)를 초과하는지 점검한다.
- 스타틴 복용 중 근육통이나 쥐 내림이 생기면 스스로 중단하지 말고 반드시 의사에게 부작용을 알린다.
- 운동과 식단 개선은 하되, 수치 변화에 과도한 기대를 걸고 좌절하지 않는다.
고지혈증은 내가 잘못 살아서 생긴 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상태를 방치하면 동맥경화로 이어지고, 저처럼 걷다가 멈춰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게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제가 직접 다리 통증을 겪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걸을 수 있는 다리로 살아야 한다고요. 스타틴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고 약의 종류나 용량을 조정하는 방향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무작정 끊는 것은 가장 위험한 선택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고지혈증 진단 및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